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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고니들의 비상~~강진의 유서깊은 다산초당.백련사.영랑생가
    그곳에 가고싶다. 주말여행 2008. 1. 24. 15:31

     

     

    겨울비가 연일 내렸다. 겨울비를 가르며 황량한 겨울들녘을 지날때 더욱더 한 겨울의 스산함이 느껴온다. 세찬 바람과 함께 강추위가 불어닥쳐온다.

     남도 답사 1번지로 꼽히는 강진으로 향했다. 

     이맘때면 강진만의 겨울은 `백조의 호수'를 를 연상케 할 만큼 고니떼들이 온다. 강진만에는 큰고니떼 말고도 빼놓을 수 없는 장관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주변 산과 어울어지는 빼어난 경치이다.

     동쪽으로는 부드러운 수백개의 산줄기가 바다로 떨어지고 서쪽에는 날카로운 자연석들이 강진만을 감싸고 있어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비경을 선사해 준다.

     특히 다산초당 천일각에서 바라보는 강진만 풍경은 가히 으뜸의 풍광이라 칭할 만 하다. 천일각에 앉아있노라니 모두다 시인이 된 기분이다.

     또한 동백림을 병풍처럼 두르고 만덕산 기슭에 자리잡은 `백련사'는 찾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평온하게 해줄뿐만아니라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핑경소리를 들으면서 차 한잔을 하면서 겨울 사색에 잠겨보기에 충분하다.

    강진읍에 자리잡은 영랑생가. 최근에 말끔하게 단장된 영랑시인의 채취 오롯이 간직한 생가이다. 돌담길을 걷는다. 가장 먼저 만나는 예스러운 탑골샘이 정겹다. 이 샘은 도르래를 이용해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린다. 대나무로 엮은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면 영랑생가다.

    이번 눈과 비가 오고 강추위 몰아닥친 겨울, 온 가족이 남도 답사 1번지 강진으로 떠나 물위를 박차고 날으는 큰 고니(천연기념물 201호)를 보고 유서깊은 유적지를 둘러보면서 따뜻한 겨울을 보내보자.

     

     

    남도 답사1번지 강진. 겨울비가 내리고, 세찬 겨울바람이 나그네의 마음을 잔뜩 움추리게 한다. 읍내에서 점심을 먹고 강진만으로 향했다.

     백조로 불리는 `큰고니(천연기념물 201호)' 수백 마리가 겨울을 나는 것을 관찰하기 위해서다. 수백여마리의 고니들이 먹이를 잡아먹으면서 놀고있다.

     승용차로 접근을 하자 고니 한마리가 경계를 하기 시작했다. 또한 갯벌에서 휴식을 취하고있는 고니, 사람들이 가까이오자 자기들만의 경계심을 표시하는 소리를 낸다.

    잠시후 물을 박차면서 날아오르는 고니들, 참으로 장관이다.

     말발굽 모양으로 생긴 강진만은 개펄이 잘 발달되고 다양한 어패류의 서식처로 큰고니는 물론 큰기러기, 청둥오리 등 수많은 겨울철새들의 중요한 쉼터다.

     강진만의 물은 멀리 태평양에서 온다. 광활한 대양에서 밀려온 바닷물이 남해의 수많은 섬을 돌아 돌아 완도를 거쳐 강진 마량 앞바다에 당도하면 그곳에서부터 강진만이 시작된다.

     육지의 물과 대양의 물이 합쳐지는 곳, 끊임없이 물줄기가 변하며 바다속 오장육부를 쉴새없이 뒤집어 놓고 있는 곳이 강진만이다.

     강진만 풍경은 제방을 경계로 드넓은 보리밭과 강진만의 기름진 개펄로 나뉜다. 개펄쪽은 무성하게 우거진 갈대숲이 물골을 따라 굽이치며 그윽한 풍경을 펼쳐 보여준다. 개펄과 갈대숲이 바로 큰고니떼를 비롯한 겨울 철새들의 보금자리다.

     큰고니는 러시아 북부와 시베리아 일대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날아오는 철새. 몸길이가 150㎝ 정도이며, 어린새는 갈색을 띠지만 성조(成鳥)는 온몸이 흰색이어서 흔히 백조라 불린다.

     순백의 깃털과 우아한 몸짓이 특징인 큰고니는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를 피해 10월말부터 3월말까지 갯지렁이와 수초 뿌리 등 먹이가 풍부하고 따뜻한 강진만에서 겨울을 난다. 본격적인 겨울추위를 보이고 있는 요즘에는 수백여 마리의 큰고니가 강진만 일대를 하얗게 수놓아 장관을 연출한다. 큰 고니가 가장 많이 관찰되는 곳은 구로마을 북쪽의 제방이나 남포마을 주변이다.

     이 곳에서는 물위나 개펄에 모여앉아 요란하게 떠들며 날개짓하는 큰고니떼를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큰고니떼는 여러 곳에 나뉘어 모여 있다가 물때에 따라 자주 자리를 옮겨 다니므로, 물때와 장소를 잘 선택해야 제대로 관찰할 수 있다.

     

     

     

     

    강진만에는 큰고니떼 말고도 빼놓을 수 없는 장관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주변 산과 어울어지는 빼어난 경치이다. 동쪽으로는 부드러운 수백개의 산줄기가 바다로 떨어지고 서쪽에는 날카로운 자연석들이 강진만을 감싸고 있어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비경을 선사해 준다. 특히 다산초당 천일각에서 바라보는 강진만 풍경은 가히 으뜸의 풍광이라 할 만 하다.

    강진에는 다산초당, 영랑생가를 비롯해 무위사와 백련사, 월남사지 등 문화유적과 역사적 유물이 즐비하다. 청자문화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청자박물관, 600여년간 왜적의 침입을 막았던 병영성지, 천혜의 미항인 마량포구 등은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다.

    `다산초당'은 조선 실학의 대가,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년(1801~1818)간의 유배 기간중 10여년간 거처한 곳으로 후학을 양성하고 목민심서를 비롯한 500여권의 책을 저술했던 조선실학의 산실이다. 이 곳엔 선생의 손길이 그대로 느껴지는 정석(丁石), 약천(藥泉), 다조(茶窕), 연지석가산(蓮池石山) 등 다산 4경이 있다.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로 유명한 강진은 사계절을 즐길 수 있는 문화답사지다. 봄에는 산자락마다 산수유 진달래 등 각종 봄꽃이 경쟁이라도 하듯 자태를 뽐내고 강진 읍내에 있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인 김영랑의 생가인 초가집 뒤뜰에는 붉은 꽃송이를 머금은 동백나무가 절로 시심을 일깨운다.

     다산초당은 유물전시관이 있어 당시의 시대상과 다산 정약용의 생을 되돌아 볼 수 있어 아이들의 역사공부에도 훌륭한 길잡이가 된다. 다산초당에서 구강포를 굽어보며 2㎞ 남짓한 길을 걸으며 백련사로 내려가는 길은 훌륭한 산책로다. 이 길을 오가며 다산과 백련사의 혜장선사가 나눴던 우정을 회상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백련사로 들어가는 길은 온통 동백나무로 숲터널을 이뤄 장관을 연출한다. 절 뒤로 펼쳐지는 야생차밭은 백련사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강진만이 한눈에 굽어보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조선시대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 정약용선생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다산(茶山)이라는 호는 강진 귤동 뒷산 이름으로 이 기슭에 머물고 계시면서 자신의 호로 써 왔다.

     

     

     

    강진읍에 위치한 영랑생가. 최근에 들어가는 입구부터 돌담길로 단정하게 만들어놓았다. `영랑생가'에 가면 김윤식 선생의 살아 숨쉬는 시혼을 느낄 수 있다. `북에는 소월, 남에는 영랑'이란 말이 보여주듯이 구수한 남도 사투리로 현대 서정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김윤식 선생의 생가를 원형대로 보존 관리하고 있다.

    영랑 김윤식 선생은 1903년 1월 16일 이곳에서 김종호의 2남 3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에는 채준으로 불렀으나 윤식으로 개명하였으며 영랑은 아호인데 문단활동시에는 주로 이 아호를 사용했다.

    영랑 선생은 1950년 9월 29일 작고하기까지 주옥같은 시 80여편을 발표하였는데 그중 60여편이 광복전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이곳에서 생활하던 시기에 쓴 작품이다.

    영랑생가는 1948년 영랑이 서울로 이거한 후 몇 차례 전매 되었으나 1985년 강진군에서 매입하여 관리해 오고 있는데 안채는 일부 변형 되었던 것을 1992년에 원형으로 보수하였고, 문간채는 철거 되었던 것을 영랑 가족들의 고증을 얻어 1993년에 복원하였다. 생가에는 시의 소재가 되었던 샘, 동백나무, 장독대, 감나무 등이 남아 있으며 모란이 많이 심어져 있다.

     

    백련사의 본래 이름은 만덕산 백련사이며 조선후기에 만덕사로 불리우다가 현재는 백련사로 부르고 있으며 신라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고려명종(1170년)때 원묘국사 요세에 의해 중창되었다.

    고려 후기에 8국사를 배출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8대사가 머물렀던 도량이며 고종 19년(1232년) 에 원묘국사 3세가 이곳에서 보현도량을 개설하고 백련결사를 일으킨 유서 깊은 명찰이다. 대웅전은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집으로 겹처마인 다포식 건물이다.

    내부에는 목조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 하고 있다. 이 삼존불은 중앙 본존불이 석가여래이기 때문에 당연히 좌우의 불상은 보살상이 배치 되어야 하는데도 여래상을 안치한 점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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