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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망의 맥가이버...뚝딱 뚝딱...
    인물 2005. 12. 1. 10:09

     

     

     

     

     

     

     희망학교의 맥가이버 유재현씨

     

    "뚝딱 뚝딱 희망을 손질하죠"

     

    늦깎이 한글 배우는 어머니들의 '보금자리'

     

    형광등 갈기 ·책상 수리 등 5년째 봉사활동

     

     

     

     

     

    전남도청에서 업무용 승용차를 운전하고 있는 유재현씨(48)는 퇴근하면 곧장 집으로 가지 않는다. 자동으로 그의 발길은 유동으로 향한다. 비가 오나 눈이 내리나 항상 반복되는 일이다. 5년째 버릇이 됐던 터라 하루라도 빠지면 좀이 쑤실 정도다.
    그가 가는 곳은 희망학교다. 가난 등 여러 이유로 학업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 늦게나마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는 곳이다. 그는 낡은 책걸상을 고치거나 전등을 갈아 끼고 부서진 청소용품을 바꾸는 일을 한다. 옛날 학교에서 잡일을 도맡아하던 소사를 연상하면 된다.
    희망학교는 유동과 계림동에 있다. 유동에는 주간 초등과정 8학급과 중등과정 2학급, 계림동에는 야간 초·중·고등과정 6학급이 있다. 학생들은 310여명 정도인데, 대부분 40대에서 60대가 주류를 이룬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어머니라고 부른다.
    “한 어머니가 제게 이런 말씀을 하더군요. `남편이 돌아가신 후 연금을 타기 위해 은행에 갔다. 그런데 글을 쓸 줄을 몰라 연금을 코로 탔는지, 입으로 탔는지 몰랐다.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기역, 니은, 디귿을 배우러 학교에 나오게 됐다.' 그분을 보면서 제가 부족한 부분이 많고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공휴일인 지난 1일에도 학교에 나왔다. 올 여름, 더위를 피하기 위해 뜯은 교실 창문을 달기 위해서다. 겨울 준비가 시작된 것이다. 중고 에어컨도, 온풍기도 하나 없는 교실에서 창문은 계절에 따라 그의 모습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방금 그의 손길을 거친 창문은 뜯겨져 있던 때가 있었던가 싶게 단단하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교실에는 그의 손때가 묻지 않은 물건이 하다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정에 달려있는 선풍기는 어느 유치원에서 버린 물건을 가져다 수리한 것이다. 방금 고친 형광등의 빛은 유달리 높은 조명도를 자랑한다. 복도에 정수기를 비치하기 위해 교실에서 인입한 전선은 반듯하게 잇대어져 있다. 옛날 사진과 자료를 모아 앨범을 만들고, 정리한 것도 그가 한 일이다.
    “손재주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어머니들도 의자가 삐거덕거리거나 하면 유 선생님을 먼저 찾습니다. 도청 이전 때문에 목포로 이사 간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동안 유 선생님이 큰 짐을 맡으셨는데. 이제 누가 빈자리를 채워야 할지 막막하네요.” 이 학교 정영관 이사장님의 말에 그는 시간 나는 대로 들르겠다며 정 이사장을 달랜다.
    유재현씨가 광주 희망학교와 연을 맺은 것은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희망학교의 전신인 희망재건중학교의 2회 졸업생이다. 그 학교는 60년대부터 보성군 일대에서 가난한 청년들을 가르치기 위한 `희망학원'을 세워 봉사활동을 펼쳤던 고 정영식 선생이 74년 화순군 능주면에 세웠던 학교다.
    “부모님들이 공부는 둘째 치고 우선 농사일을 거들어주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에 진학을 못했는데, 마침 학교가 생겨 다닐 수 있었지요. 당시 내가 열일곱으로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습니다. 그래서 고 정영식 교장선생님과 자전거를 타고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학생 모집도 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남 앞에 서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 대목은 제가 오십 평생을 살면서 간직하고 있는 삶의 교훈이기도 합니다.””
    그런 가르침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지난해 그를 주축으로 졸업생들의 모임인 희망회원들이 뜻을 모아 초대교장인 고 정영식 선생의 추모비를 고흥군 도덕면에 건립했다. 지난 78년 1월 4회 졸업식을 불과 며칠 앞두고 젊은 나이인 38살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지 26년만이었다.
    현재 광주 희망학교는 고 정영식 선생의 형인 정영관씨(70)가 운영하고 있다. 3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듯 지금까지 희망학교를 수료한 학생은 4천500여명. 이 가운데 2천800여명이 초중고등 검정고시에 합격했으며, 희망학교를 거쳐간 대학생 봉사자만 2천400여명에 이른다.
    이 학교는 현재 유동 부지가 운영자 소유가 아니라는 이유로 학력 인정이 취소되면서 교육청으로부터 보조금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공교육이 흡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배움을 제공하는 있는데도 교육당국은 `규정이 그렇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지원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GNP 2만불 시대를 지향한다는 나라에서 글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거니와 이권을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배움의 장을 제공하고 있는 학교에 형식적인 논리만 들이대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인 것이다.
    “여기 있는 의자들을 보세요. 어머니들이 자리를 표시하려고 방석을 의자에 묶었습니다. 좋은 의자에서 공부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죠. 그나마 지금은 많이 좋아진 것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보다 좋은 시설에서 어머니들이 마음 놓고 공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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